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한국언어문화연구원 편, 「한국 대표 명시3」, 도서출판 빛샘, 1999, 934쪽.
- 출전 : 《현대문학》
동시를 빠짐없이 발표했다고 한다.
명동 소학교 5년 과정을 수료하고 중국인 소학교 6년 과정에 편입하여 1년간 더 수업하였고 다음 해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달라진 무대에서 동주는 순수한 뜻을 펴갔다. 먼저 급우들과 함께 교내 문예지를 발간하여 문예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축구 선수
시작품 「참회록」은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된다. 참회록은 일제가 강요하는 창씨개명에 굴복한 자신을 참회한 것이다.
1942년 4월 2일, 윤동주는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 선과에 입학하였다. 입교대학 시절인 4-6월의 시작품 「쉽게 씌어진 詩」를 비롯한 5편을 서울의 한 친구에게 우송하였
시인
우리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이들을 민족시인이라 평가하고 불려진다. 이들은 30년대부터 40년대 까지 실질적인 저항운동에서 비롯하여 문학운동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독립에 몸 바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시인들 중 차이가 확연히 들어나면서 같은 민족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육사
시의 큰 미덕이다.
1연에서 해방을 맞아 기쁘다는 마음보다는 홀어머니 앞에서 먼저 죽는 것이 부끄럽다는 소시민 의식을 가진 자신을 고백한다. 그러나 민족의 감격을 맞고도 병상에만 있을 수는 없어 2연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새나라 건설에 필요한 굳건한 청년과 씩씩한 웃음을 만나러 거리에 나
시가 씌어질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또한 강한 자기희생과 굳은 결의 뒤에는 옳은 일을 하면 틀림없이 살아남는다는 기독교적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그의 자각은 그의 걸작들,「새벽이 올 때까지」,「무서운 시간」,「십자가」,「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의 시에서는 오히려 저항적인 사회의식과 종교적인 참회의식이 강조되고 있다.
(1) 그리움과 향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전체에 흐르는 정서를 그리움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소학교 때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동생 등 가족에 대한 그리움, 떠나 온 고향에 대한
윤동주의 시는 자신의 본모습을 찾으려는 강한 지향성을 뼈대로 삼았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그는 죽음, 곧 백골의 차원에 이르는 것으로 그의 시를 마무리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白骨 몰래/아름다운 또다른 故鄕에 가자”라고 노래부르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이 액